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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이야기

프랑스어 방언의 세계

by Language Diary 2025. 6. 23.

 


프랑스어는 하나가 아니다?
프로방스어, 오크어, 브르타뉴어 등 다양한 지역 언어와 방언이 존재하는 프랑스어의 세계를 사회언어학과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표준 프랑스어 이면의 다채로운 언어 현실을 이해해 보세요.

 

 

 

프랑스어 방언의 세계 – 표준어 바깥의 언어들

프랑스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리에서 사용되는 ‘표준 프랑스어(le français standard)’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언어적 현실은 이보다 훨씬 풍부하고 복잡합니다. 프랑스 전역에는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다양한 지역어(régionalismes)방언(dialectes)이 존재하며, 이들은 단순한 억양의 차이를 넘어 독자적인 언어 체계와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해 왔습니다.

프랑스 지도

 

이 글에서는 프랑스어의 방언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어떤 종류가 있으며, 오늘날 어떤 지위와 도전을 겪고 있는지를 사회언어학적,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프랑스어’는 어떻게 표준이 되었는가?

중세 프랑스에서는 지금의 ‘표준 프랑스어’가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오일어(Langue d’oïl)오크어(Langue d’oc) 계통을 포함한 다양한 로망스 언어들이 공존하고 있었고, 지역마다 사용하는 말이 크게 달랐습니다.

 

오늘날의 표준 프랑스어는 파리 지역의 오일어 방언(프랑시앵, francien)이 근간입니다. 이는 프랑스의 중앙집권화와 함께 점차 국가 공식 언어로 자리 잡게 되었고, 1539년 빌레르-코트레 칙령(Ordonnance de Villers-Cotterêts)에서 행정 문서에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하면서 제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세기 공화정 체제하에서 ‘국민 통합’을 목표로 하는 교육정책이 강화되며, 지역어 억압 정책이 펼쳐졌습니다. 학교에서는 지역어 사용이 금지되었고, 프랑스어만이 ‘문명화된 언어’로 간주되면서 방언과 지역어는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2. 프랑스 내 대표적인 방언 및 지역어

프랑스에는 아래와 같은 다양한 방언 및 지역어가 존재하며, 이들은 언어학적으로도 서로 구분되는 체계를 가집니다.

 

오일어 계통 (북부 및 중부 프랑스)

  • Picard (피카르디): 릴(Lille) 주변 지역
  • Wallon (왈롱): 북동부 및 벨기에와의 경계 지역
  • Normand (노르망): 노르망디 지방
  • Gallo (갈로): 브르타뉴의 동부에서 사용

이는 표준 프랑스어와 가까운 언어적 특징을 가집니다. 어휘와 억양에 일부 차이가 있으며, 현재는 고령층 위주로 남아 있습니다.

 

 

오크어 계통 (남부 프랑스)

  • Provençal (프로방스어)
  • Languedocien (랑그도)
  • Gascon (가스코)

모두 Occitan (오크어)의 하위 방언으로 분류됩니다. 라틴어의 고유성을 많이 유지하고 있으며, 음운 및 어휘에서 프랑스어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브르타뉴어 (Breton)

  • 켈트어계 언어로 웨일스어 및 아일랜드어와 유사합니다.
  • 브르타뉴 반도에서 사용되며, 프랑스어와 계통이 전혀 다릅니다.

 

알자스어 (Alsacien)

  • 독일어계 언어로, 독일어 방언에 가깝지만 프랑스어 화자에게는 이질적입니다.
  • 알자스-로렌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됩니다.

 

코르시카어 (Corse)

  • 이탈리아어(특히 토스카나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 코르시카 섬에서 여전히 강한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3. 사회언어학적 관점에서 본 방언의 위치

프랑스는 헌법 제2조에서 "프랑스의 언어는 프랑스어다(La langue de la République est le français)"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은 지역어의 공적 사용을 제한하고, 표준어 우위 체제를 제도화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 유네스코, 지역 운동의 압력으로 인해 2000년대 이후에는 지역어 보존과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현재는 일부 지역어가 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으며, 라디오 및 지역 방송에서도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지역어는 실제 일상생활에서 점점 소멸 위기를 맞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지역어를 사용하는 고령층이 줄어들수록 언어의 생존 가능성도 낮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4. 언어와 정체성

프랑스어 표준어 중심의 사고방식에서는 종종 방언(dialecte)이나 사투리(patois)를 ‘비표준’ 또는 ‘열등한 언어’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언어학적으로 보았을 때, 방언은 단순한 ‘프랑스어의 변형’이 아니라 각기 독립적인 언어 체계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특히 오크어, 브르타뉴어, 코르시카어 등은 로망스어나 게르만어, 켈트어처럼 프랑스어와 다른 뿌리를 공유하는 별개의 언어입니다. 이들은 해당 지역의 역사, 신화, 음악, 민속 등 문화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방언을 지키는 일은 단지 말의 보존이 아니라 지역 문화의 계승과도 직결됩니다.

 

 

5. 방언의 부활 또는 소멸

최근에는 프랑스 내에서도 지역어와 방언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교육·이중언어 수업
Occitan, Breton, Corsican, Basque 등의 지역어는 학교 정규 교육 과정 일부로 채택되고 있으며, 몰방(immersion) 학교 형태로 운영되는 예도 있습니다.

 

이중 표지판
코르시카, 브르타뉴, 알자스 일부 지역과 도로 표지판 및 지역 안내판에 병기 표시가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문화 부흥 운동
각 지역어에 기반한 음악, 문학, 축제, 지역 방송 등이 활성화되어 있으며,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교류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언어 사용자는 급감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어는 유네스코 기준으로 ‘위기 언어(langue en danger)’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표준어 밖의 프랑스어를 바라보다

이 글에서는 프랑스의 표준어가 아닌 언어들, 즉 지역어·방언의 역사, 정치, 사회적 위치를 살펴보았습니다. 프랑스 내부에는 여전히 수많은 고향의 언어들, 코르시카섬의 산골 작은 마을부터 브르타뉴 해안의 어촌까지,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진 언어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표준 프랑스어의 높은 위상 뒤에는, 이러한 언어들이 파괴와 억압의 역사를 견디며 살아남은 문화의 흔적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교육적·문화적 부흥 운동은, 이 언어들이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살아 있는 영어의 계승자임을 보여줍니다.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여러분께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참고문헌 및 자료

  • Lodge, R. Anthony. A Sociolinguistic History of Parisian French,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 Blanchet, Philippe. Discriminations: combattre la glottophobie, Textuel, 2020.
  • UNESCO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
  • Ministère de la Culture, France. Langues régionales et patrimoine immatériel.
  • Cerquiglini, Bernard. Les langues de la France, Rapport au Ministre de l'Éducation nationale,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