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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이야기

프랑스어는 왜 국가가 관리할까?

by Language Diary 2025. 6. 24.

 

프랑스어는 왜 국가기관이 직접 관리할까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역할부터 프랑스가 언어를 정치적·문화적 자산으로 여기는 이유까지, 프랑스어가 가진 특별한 지위를 쉽고 깊이 있게 풀어봅니다.



프랑스어는 왜 국가가 관리할까? – 아카데미 프랑세즈 이야기

“언어를 국가가 관리한다?”
이 말이 조금 낯설게 들릴 수도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프랑스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국가가 공식적으로 지키고 다듬는 문화 자산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죠.

Institut de France, Paris. 출처: Dennis G. Jarvis, CC BY-SA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4808422)

 

그 중심에는 바로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라는 프랑스 국립 기관이 있습니다. 400년 가까이 프랑스어의 철자, 의미, 심지어는 ‘어떤 말을 써야 하는지’를 결정해 온 이 기관은, 그야말로 프랑스어의 ‘수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프랑스는 이렇게까지 ‘언어 관리’에 진심일까요?

 

 

1. 단순한 언어가 아닌, '정체성'

프랑스에서 언어는 단순히 쓰는 말이 아닙니다. 프랑스어는 프랑스 그 자체를 대표합니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방언과 지역 언어가 혼재했던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는 중앙 집권적인 국가 운영을 가능하게 한 도구였습니다. 말이 통일되어야 행정도 통일되고, 법도 적용될 수 있었죠.

 

이런 배경 때문에 프랑스어는 지금도 ‘국민을 하나로 묶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어를 지키는 일은 곧 프랑스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인 셈입니다.

 

 

2. 프랑스어는 국가 브랜드이기도 하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죠. 프랑스는 오랫동안 철학, 문학, 예술 등에서 유럽 문화를 이끌어왔고, 그 중심엔 늘 프랑스어가 있었습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루소, 볼테르, 사르트르의 작품들… 이 모두가 프랑스어로 쓰인 유산입니다.

즉, 프랑스어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프랑스의 지적 유산문화적 영향력의 도구였습니다.


즉, 프랑스어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프랑스의 지적 유산문화적 영향력의 도구였습니다. 이 언어가 흐트러지거나 외래어로 넘쳐날 경우, 프랑스는 자신들이 구축해 온 문화적 이미지에도 금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어의 영향력이 강해질수록, '프랑스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도 더 강해지는 것이죠.

 

3. 아카데미 프랑세즈: 말 그대로 언어의 파수꾼

이런 배경 속에서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1635년, 리슐리외 추기경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지식인들의 모임처럼 시작됐지만, 곧 공식적인 언어 규범 기관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프랑스어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e-mail” 대신 “courriel”을 쓰라고 권장하거나, “hashtag” 대신 “mot-dièse” 같은 프랑스어 대체어를 만들어내는 일도 아카데미의 몫입니다.

 

물론 요즘 세대에게는 조금 고리타분한 기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프랑스 정부는 여전히 이 기관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고, 언론이나 공공문서에서 아카데미의 기준을 따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아카데미의 권위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예전만큼 절대적이지는 않아요. 특히 젊은 세대나 일반인들은 아카데미의 권고를 항상 따르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프랑스인들이 "email"을 그대로 쓰고, "hashtag"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죠.  

 

언어는 결국 사람들이 쓰는 것이라, 아무리 '위에서' 정해도 실제 생활에서는 편리함과 자연스러움이 우선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요즘 '완전한 통제자'라기보다는 '영향력 있는 가이드라인 제공자' 정도의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4. 글로벌 시대, 언어가 경쟁력인 나라

21세기 글로벌 사회에서 영어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그 속에서 프랑스는 자신들의 언어를 국제무대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적극 관리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유네스코나 EU 등 국제기구에서 여전히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남아 있기를 원하고, 프랑코포니(Francophonie)라는 프랑스어권 연합체도 운영 중입니다. 이 모든 활동은 프랑스어를 외교와 문화의 무기로 활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5. 말은 곧 문화다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는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말을 고르고, 표현을 다듬고, 문장을 완성하는 일은 곧 문화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새로운 표현이 등장하면 ‘그냥 쓰자’고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바꿔 쓸 수 있을까? 프랑스어답게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죠.

 

이건 불편함이라기보단, 프랑스가 언어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들에게 언어는 감성과 품격, 문화의 집약체이며,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며, 프랑스어를 배우는 우리에게도

이런 문화는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프랑스어는 단순히 외워서 말하는 언어가 아니라, 사고방식과 표현의 틀 자체가 문화로 연결된 언어입니다.

 

‘왜 이렇게 문법이 복잡할까?’ ‘왜 단어가 이렇게 길까?’ 싶을 때,
그 속에는 프랑스가 언어에 부여한 의미, 태도, 역사, 자부심이 들어 있습니다.

 

프랑스어를 국가가 관리한다는 것은 단순한 통제가 아니라,
언어를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한 나라의 문화적 고집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고집이 현실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지만 말이에요!